[소멸대응] “마지막 한 사람까지 존엄하게”… 일본 ‘한계취락’의 역설이 한국 지방에 던지는 질문
[더 밸런스 = 이지혜 기자] 인구의 50% 이상이 65세를 넘긴 마을, 이른바 ‘한계취락’은 더 이상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경북과 전남의 수많은 마을이 이미 이 단계에 진입했거나 코앞에 두고 있다. 본지는 이서윤 기자의 분석을 통해, 소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철수’를 고민하던 일본 지자체들이 최근 어떻게 ‘집약과 연결’을 통해 마을의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는지, 그 처절하고 정교한 대응책을 해부했다.

‘콤팩트 시티’의 빛과 그림자: 흩어진 점들을 선으로 잇다
일본의 소멸 대응 핵심은 ‘모으는 것’이다. 거주지를 거점 지역으로 집약시키고 외곽 지역은 자연으로 되돌리는 ‘콤팩트 시티’ 정책은 행정 비용을 줄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의 정서적 저항과 공동체 붕괴라는 과제를 남겼다. 이서윤 기자는 “한국형 소멸 대응은 무조건적인 집약보다는, 기존 거주지를 유지하되 ‘이동형 서비스(MaaS)’를 통해 의료와 보급을 연결하는 유연한 거점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돌봄의 자생력: ‘서로 돕는 마을’이 지탱하는 보건 안전망
일본 시마네현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문 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생활 도우미’가 되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기초적인 건강 데이터를 수집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지역 공동체가 스스로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결집한 결과다. 기술적으로는 스마트 워치 등을 활용한 비대면 모니터링이 뒷받침되지만, 그 기저에는 ‘단 한 명의 이웃도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생명 존중의 철학이 깔려 있다.
정책적 대안: ‘관계 인구’를 넘어 ‘공헌 인구’로의 진화
이제는 단순히 며칠 머물다 가는 관계 인구만으로는 마을을 지탱할 수 없다. 일본은 도시 청년들이 주말마다 내려와 농사일을 돕거나 지역 브랜딩에 참여하는 ‘특정한 역할’을 부여하는 공헌 인구(Contributing Population)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 지자체 역시 이들이 지역 사회의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명예 시민권을 부여하거나, 세제 혜택과 연계된 로컬 펀드를 조성하는 등 실질적인 ‘연결고리’를 강화해야 한다.
이지혜 기자는 “소멸은 막아야 할 재앙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품위 있게 적응하고 재편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정부는 ‘인구 증대’라는 허황된 목표 대신, 줄어든 인구로도 시민의 삶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유지될 수 있는 ‘적정 규모의 사회’를 설계하는 데 행정력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