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여건] ‘한 달 살기’가 ‘평생 살기’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생활 인구의 함정과 정착의 문턱
[더 밸런스 = 정다인 기자] 인구 감소 위기에 처한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도입한 ‘워케이션’과 ‘로컬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이 시행 3년 차를 맞았다. 주민등록상 인구는 줄어도 지역에 체류하며 경제 활력을 높이는 ‘생활 인구’를 늘리겠다는 전략은 일단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모양새다. 하지만 잠시 머무는 손님이 아닌, 뿌리를 내리는 정주 인구로의 전환율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단순한 체험 위주의 정책이 가진 한계를 정밀하게 짚어보았다.

느슨한 연결의 한계: ‘여행자’와 ‘이웃’ 사이의 거대한 간극
최근 1년간의 이동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한 청년층의 80% 이상이 재방문 의사를 밝혔으나 실제 이주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비중은 5% 미만으로 나타났다. 지역의 풍광과 여유로운 삶에는 매력을 느끼지만, 막상 삶의 터전을 옮기기에는 교육과 의료,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소프트웨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간만 제공하면 사람이 모일 것이라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가 낳은 정착의 병목 현상이다.
정주 여건의 핵심은 ‘지속 가능한 관계’와 ‘경제적 실익’
성공적으로 외지인을 정착시킨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발견된다. 단순 주거 지원을 넘어, 지역 내 기존 커뮤니티와 이주 희망자를 촘촘하게 엮어주는 ‘휴먼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낯선 곳에서의 고립감을 해소해 줄 정서적 안전망과 함께, 원격 근무가 불가능한 직종을 위한 로컬 비즈니스 창업 지원이 결합될 때 비로소 생활 인구는 정주 인구로 진화한다. 지자체의 예산이 화려한 워케이션 센터 건축보다, 이주민과 원주민이 섞일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에 더 많이 배분되어야 하는 이유다.
제도적 보완: 생활 인구의 정주화를 위한 정책적 유인책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 ‘체류’에서 ‘안착’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일정 기간 이상 지역에 머물며 공헌 활동을 한 생활 인구에게 주택 청약 우선권을 부여하거나, 지역 내 공공시설 이용 혜택을 정주민 수준으로 확대하는 등의 실질적인 인센티브 설계가 필요하다. 또한, 이들이 지역의 의사결정 과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열어줌으로써 지역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고취시켜야 한다.
인구 정책의 패러다임은 이제 '숫자 늘리기'에서 '삶의 질 설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잠시 스쳐 가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되, 그 인연이 지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주 여건의 내실을 기하는 것. 그것이 소멸 위기 지역이 생존을 넘어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