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시선] 텅 빈 지방 역세권의 절규, '균등' 없는 화려한 조감도는 필요 없다
[더 밸런스 = 이병호 기자] "여기가 예전엔 사람 치여서 못 지나가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저녁 7시만 돼도 고양이 한 마리 안 지나가요." 충청권의 한 거점 역세권에서 20년째 식당을 운영해온 김 모 씨(62)의 말이다. 정부는 수천억 원을 들여 멋진 역사(驛舍)를 짓고 광장을 닦았지만, 그 광장을 채울 '사람'과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빠져 있었다. 현장에서 마주한 지역 균형 발전의 자화상은 화려한 조감도와는 사뭇 다른, 적막한 공기뿐이었다.

■ '하드웨어'만 남고 '사람'은 떠난 로컬의 민낯
최근 이병호 국장이 방문한 지방의 여러 도시재생 현장은 공통적인 증상을 앓고 있었다. 이른바 '예산 소진용 인프라'의 역습이다.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은 '청년 창업 센터'는 입주 기업이 없어 불이 꺼져 있고, '로컬 커뮤니티 공간'은 관리비 부담에 문을 닫기 일쑤다. 이는 지역의 자생적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중앙의 예산을 기계적으로 분배하는 '기회의 균등'이 낳은 폐해다.
진정한 지역 균등은 똑같은 건물을 전국에 짓는 것이 아니다. 각 지역이 가진 고유의 결을 살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능을 채워넣는 '내실의 균등'이 우선되어야 한다. 김 씨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반짝이는 유리 건물이 아니라, 청년들이 이 동네에서 먹고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상권과 기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의 목소리는 명확하다. 정부의 시선이 '건물'이 아닌 '사람의 활동'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 앵커 스토어와 로컬 크리에이터의 '상생 균형'
그나마 희망을 본 곳은 관(官) 주도가 아닌 민간의 자생적 노력이 꽃피는 골목들이었다. 지역의 낡은 창고를 개조해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청년들은 정부의 보조금보다 '규제 완화'와 '공정한 경쟁 환경'을 원하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가 지역을 브랜딩하면 임대료가 올라 쫓겨나는 게 가장 두렵다"며 '상생의 균형'을 법적으로 보호해달라고 호소한다.
이병호 국장은 현장의 시선을 통해 '균등'의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제언한다. 수도권의 핫플레이스를 그대로 베끼는 '복제형 로컬'은 필패한다. 지역의 서사가 담긴 앵커 스토어를 보호하고, 그들이 지역민과 이익을 나누는 구조를 만들 때 비로소 로컬은 생명력을 얻는다. 4월의 봄볕은 전국에 공평하게 내리쬐지만, 지역 경제의 온기는 여전히 극심한 불균형 속에 있다.
■ 결언: 현장이 답이고, 사람이 길이다
지역 균형 발전은 책상 위의 수치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간절한 눈빛 속에 답이 있다. 정부는 '균등'이라는 이름의 획일적인 지원을 멈추고, 지역마다 다른 현장의 결핍을 채워주는 '맞춤형 정책'으로 선회해야 한다.
이병호 국장은 강조한다. "진정한 밸런스는 모두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고유한 가치를 가장 빛나게 만드는 것"이라고. 화려한 조감도 속의 유령도시를 만들 것인가, 소박하더라도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살아있는 지역을 만들 것인가. 4월, 우리 국토의 구석구석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