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사람] 지방 산단 ‘R&D 사막화’ 심화, 기술 국산화 기회 균등하게 배분해야
[더 밸런스 = 이병호 기자] 정부가 국가 전략기술 확보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R&D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나, 정작 지역 경제의 심장부인 지방 산업단지 입주 기업들은 연구개발 자산에서 소외되는 ‘R&D 사막화’ 현상을 겪고 있다. 지방 강소기업의 기술력이 인구 정책 및 지역 생존과 직결되는 만큼, 수도권에 편중된 R&D 인프라를 지방 산단으로 과감히 분산하는 미래 전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현황] 지방 산단 기업의 R&D 수행 능력과 격차 실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전국 국가산업단지 입주 기업 중 자체 부설 연구소를 보유한 비중은 수도권 산단이 42.8%에 달하는 반면, 비수도권 산단은 18.6%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첨단 반도체나 이차전지 등 12대 전략기술 관련 R&D 과제의 75% 이상이 수도권 대학과 대형 연구소에 집중되면서, 지방 산단 기업들은 단순 가공이나 저부가가치 생산 단계에 머무르는 '기술적 하청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병호 국장은 이러한 현상이 결국 지방의 인력 구조를 단순 노무 중심으로 재편하고, 고학력 청년 인재들이 지방 산단을 기피하게 만드는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기술 자산의 불균형이 곧 일자리의 불균형으로, 나아가 지역의 소멸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 [문제점] 인프라 격차가 부른 ‘연구 인력의 지방 기피’
지방 산단 R&D 활성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고급 인력의 부재'다. 연구 인력들이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이유는 단순히 연봉 문제만이 아니다.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첨단 장비의 부재, 동료 연구자들과의 네트워크 결여, 그리고 자녀 교육과 주거라는 정주 여건의 격차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현행 R&D 예산 지원 방식이 '성공 가능성'과 '과거 실적'에 과도하게 치중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인프라가 이미 갖춰진 수도권 기업들이 과제를 독식하게 되는 구조 속에서, 기술 잠재력은 있으나 기초 체력이 부족한 지방 강소기업들은 시작점부터 불공정한 경쟁을 강요받고 있다. 기술의 균등한 기회가 박탈된 상황에서 '지역 생존'을 논하는 것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 [대안] 지역 생존을 위한 R&D-인구 정책 연결 전략
첫째, '지방 산단 전용 R&D 공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개별 중소기업이 고가의 연구 장비를 직접 구매하기는 불가능하므로, 산단 거점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의 분원을 설치하고 최첨단 장비를 공유하는 '오픈 랩(Open Lab)' 체제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
둘째, '지역 인재 매칭 R&D 예산제'를 신설해야 한다. 지방 산단 기업이 해당 지역 대학 졸업생을 연구원으로 채용할 경우, 과제 선정 시 가점을 부여하고 인건비의 80% 이상을 국가가 보전해 주는 파격적인 혜택이 필요하다. 이는 기술 개발과 인구 정착을 동시에 잡는 유기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셋째, 지방 R&D 인력을 위한 '통합 정주 패키지'의 법제화다. 지방 산단 내 연구소 근무 인력에게는 특별 공급 아파트 우선권과 함께 소득세 감면 혜택을 부여하고, 자녀들을 위한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을 결합하여 수도권 이상의 정주 만족도를 제공해야 한다.
■ 결언: 기술 주권의 균등이 지역의 미래다
이병호 국장은 지방 산단의 기술력이 무너지는 것은 국가 제조 경쟁력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경고한다. R&D 예산은 단순히 기업의 성장을 돕는 돈이 아니라, 그 지역에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드는 '생명줄'이다. 4월, 정부가 수립 중인 내년도 R&D 예산 배분 가이드라인에는 반드시 '공간적 정의'와 '지역 생존'의 관점이 반영되어야 한다. 기술이 흐르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지역의 미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