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탄소 감축, 양보다 속도가 관건”… 건국대 연구팀, 폭염 위험 규명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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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 목표량 도달 속도에 따른 지역별 극한 폭염 위험의 차이를 보여주는 개념도. 사진제공=건국대학교

[포인트뉴스 = 김현민 기자] 동일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더라도 배출 ‘속도’가 빠르면 지구의 열 흡수 시스템이 마비되어 육지의 극한 폭염 위험이 훨씬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건국대학교 박인홍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를 통해 탄소중립 정책에서 배출량만큼이나 ‘감축 경로’가 중요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 누적 배출량 같아도 ‘빠른 배출’ 시 육지 온난화 더 심각

기존 기후 정책은 인류가 추가로 배출 가능한 총량인 ‘탄소예산’을 설정하고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2℃ 내로 억제하는 데 집중해 왔다. 그러나 박인홍 교수팀이 29개 지구시스템 모델을 분석한 결과, 동일한 탄소 목표량에 도달하더라도 그 과정이 빠를 경우 육지의 온난화와 폭염 노출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났다.

실제로 탄소배출이 빠르게 진행된 경로에서는 전 지구 육지 평균 최고기온(TXx) 증가폭이 2.66℃에 달해, 느린 경로(2.46℃)보다 0.2℃ 더 높았다. 또한 전 세계 46개 육상 지역 중 약 80~85%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극한 폭염 노출 면적이 더 넓어지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는 단순히 ‘얼마나 배출하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배출하느냐’가 지역별 기후 재난의 강도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임을 시사한다.

■ 해양의 열 흡수 한계가 원인… 대기와 육지에 열 에너지 정체

연구팀은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결정적 원인으로 ‘해양의 열 흡수 속도’를 지목했다. 탄소를 천천히 배출할 경우 바다가 대기의 열을 흡수하여 심해로 전달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된다. 바다가 거대한 ‘열 저장고’ 역할을 하며 지표면의 온도 상승을 완충해 주는 것이다.

반면 짧은 기간 동안 탄소가 대량으로 배출되면, 심층 해양이 열을 충분히 흡수하기 전에 에너지가 대기와 육지에 머물게 된다. 이로 인해 해양에 저장되지 못한 과잉 열 에너지가 육지의 기온을 끌어올리고 극한 폭염을 유발하게 된다. 연구 데이터에서도 느린 배출 경로에서는 바다에 저장된 열량이 많았으나, 빠른 경로에서는 대기 온난화 구조가 더욱 뚜렷하게 확인됐다.

■ 기후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감축 속도’가 정책의 핵심 변수

이번 연구는 탄소중립 및 기후완화 정책 수립에 있어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단순히 최종적인 탄소중립 달성 시점만을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속도와 경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실제 기후 위험을 줄이는 관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폭염에 취약한 지역일수록 배출 경로에 따른 위험도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박인홍 교수는 “탄소중립 정책은 총배출량뿐만 아니라 배출이 진행되는 속도와 경로를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향후 국가별 기후 위험 평가와 세부적인 적응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과학적 근거로 활용될 전망이다.


김현민 기자의 시각: "환경 정책에서 '그린워싱'을 배격해야 하는 이유가 이번 연구로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일부 기업이나 국가가 최종적인 탄소중립 수치만을 내세우며 당장의 감축 속도를 늦추는 것은, 결과적으로 지구의 열 조절 능력을 마비시키는 무책임한 행보입니다. 바다가 열을 삼킬 시간을 주지 않는 '빠른 배출'은 결국 육지에 사는 인류에게 폭염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기후 저널리즘은 단순히 '목표치 달성 여부'를 넘어,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어떤 '속도'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지 그 공정의 실효성을 엄격히 감시해야 합니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는 수치 뒤에 숨겨진 '시간의 속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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