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예술의 뿌리를 찾다, '길이 된 사람들'이 남긴 선명한 궤적

[포인트뉴스 = 이서윤 기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4월 장애인의 달을 기해 선보인 ‘한국장애예술인 역사전 - 길이 된 사람들’이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그간 한국 예술사에서 소외되었던 장애예술인들의 발자취를 ‘역사’라는 당당한 이름으로 복원해냈다는 점에서 미디어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 권위적 형식 탈피한 소통의 장… 조선부터 현대까지 잇는 예술적 대담
지난 22일 대학로 이음센터 이음갤러리에서 열린 오픈 행사 ‘역사전 인물 이야기 나누기’에는 120여 명의 인파가 몰려 전시의 열기를 증명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기존의 전형적인 축사나 내빈 소개를 과감히 생략하고, 방귀희 이사장과 정창권 교수(고려대 문화창의학부)의 심도 있는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어 실질적인 정보 전달과 공감의 깊이를 더했다.
대담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묵묵히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온 장애예술인들의 삶을 조명했다. 정창권 교수는 역사 속 인물들이 처했던 사회적 제약과 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과정을 정밀하게 해부하며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인문학적 고찰을 제공했다.
■ 1세대 예술인과 유족의 만남… 살아있는 증언으로 복원된 생명력
전시의 진정성을 더한 것은 현장에서 활동 중인 1세대 장애예술인들과 작고한 거장들의 유족이 나눈 생생한 증언이었다. 소설가 주영숙, 화가 석창우, 무용가 김용우 등 한국 장애예술의 기틀을 닦은 이들이 직접 참여해 자신들의 예술 활동을 소개했다.
특히 수필가 장영희 교수의 여동생과 장창익 화백의 부인 이애심 여사 등 유족들이 참석해 고인의 예술적 투혼을 회고하는 대목에서는 장내에 깊은 울림이 퍼졌다. 1930년대 시각장애인 유동초의 퉁소 음원 복원과 발달장애인 소리꾼 최준의 ‘심청가’ 공연은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역사를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역사적 자산의 콘텐츠화 제언… 장애예술의 자립적 토대 구축
전문가 패널들은 이번 역사전이 지닌 정책적, 문화적 가치에 주목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와 김재홍 문학평론가 등은 역사 속 장애예술인들을 현대적 콘텐츠로 재창작하여 대중화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장애예술이 시혜적 차원의 복지를 넘어, 독자적인 문화 산업적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와 궤를 같이한다.
방귀희 이사장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예술적 성과가 제대로 인정받아야 장애예술이 탄탄한 기반 위에서 성장할 수 있다”며, 이번 전시가 장애예술인들의 보건 주권과 예술적 권리를 강화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길이 된 사람들’ 전시는 대학로 이음갤러리에서 오는 5월 10일까지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서윤 기자의 시각: "이번 역사전은 우리 문화계가 오랫동안 간과해온 '예술의 원천적 다양성'을 증명하는 소중한 기록물입니다. 장애예술인들을 시대를 견뎌낸 '객체'가 아닌 역사를 개척한 '주체'로 호명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특히 심청가를 자립적 인물로 재해석하는 시각처럼, 편견에 가려진 본질을 찾아내는 인문학적 노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장애예술은 대중과 진정으로 교감하는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