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짓의 미래

인간을 흔히 만물의 영장이라 부른다. 영장(靈長)은 영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다른 동물들과 구분하여 사람을 칭할 때 사용한다. 인간이 영장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뛰어난 지능을 갖췄기 때문이다. 인류의 발전사는 인간의 사고력과 창의력이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이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바보같이 꼬박꼬박 사고를 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이 우주로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을 쏘아 올리거나 수천미터 깊이의 바다를 탐사하기 위한 잠수정을 만들거나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배를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감으면 코 베어가는 험난한 세상에서 그때그때 환경에 유리한 형질을 갖은 생물만이 살아남아 진화를 하는데 '음, 이 형질은 천만 년 뒤의 후손에게 아주 좋을테니 남겨두자'와 같은 한가로운 상황은 있을 수 없다.
진화는 항상 긍정적일까?
당장 먹을 것을 찾거나 위험한 천적을 피하는데 1%라도 유리한 구조가 선택되어 온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뇌는 최고의 사고 기계를 목표로 세심하게 설계된 결과물이 아니라, 그저 요령과 땜질과 편법을 덕지덕지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인간의 뇌는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오류가 발생한다. 그 중 하나는 좀 더 쉽게 판단을 내리기 위한 '휴리스틱heuristic'이다. 휴리스틱이란 간단히 말해 몇가지의 패턴을 보고 미루어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아침이 되면 해가 뜬다'라고 판단하거나 동료가 색깔이 있는 버섯을 먹고나서 크게 배탈이 나는 것을 보고 '색깔 있는 버섯은 뭐든간에 피하자'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구조가 '정확히 어떤 색깔의 버섯이 문제인건지 하나하나 먹어보면서 판단해보자'라는 사고구조보다 생존률이 높았음은 당연할 것이다.

오류는 휴리스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취하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오류, 일단 어떤 행동을 선택하고 나면 그것이 잘못되었더라도 옳았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는 '선택 지지 편향choice-supportive bias', 사회적동물인 인간의 본성에 따라 무리에서 튀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남들을 따라하는 '집단 사고groupthink' 등 인간이 정밀한 사고기계가 아니라는 증거는 너무나 많다.
우리는 세상을 실제로 있지도 않은 패턴에 따라 이리저리 가르고, 제일 처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기준으로 즉각적 판단을 내리고, 원래 갖고 있던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취하고, 집단에서 튀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별 이유 없이 우리가 잘났다고 확신하니 편견이 꽃필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인간의 지적능력은 우주를 탐사할 정도로 고도로 발달된 과학과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운 문화를 낳았지만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발휘되었던 것은 아니다. 놀라운 지적능력의 성과물 아래의 그늘진 발판에는 여러가지 사고의 오류로 엇나가고 망가져 버린 결과들이 쌓여있다.
흑역사라는 단어를 보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아주 큰 잘못을 했거나 너무나 치욕스러운 경험(예를 들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이나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가 의병장들을 처형시킨 것)을 하여 기억하기도 싫은 경우와 아주 부끄럽고 창피한 행동을 하거나 너무나 바보같은 일을 벌려 잊어버리고 싶은 경우가 그것이다. 톰 필립스의 '인간의 흑역사'에서 흑역사는 주로 후자를 가르킨다.
대중의 힘
제1장 '우리 뇌는 바보'에서는 인간의 뇌가 어째서 이런 바보같은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해 탐구해본다. 제2장 '아, 좋았던 환경이여'에서는 인류가 농경을 시작했던 것부터 주변 환경을 인간의 생각대로 건들다 엉망으로 만든 사례들을 짚어본다. 제3장 '생명은 살 길을 찾으리니'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려는 바보같은 짓이 불러온 사건을 둘러본다. 제4장 '지도자를 따르라'에서는 인간이 판단을 대신 내려줄 소수의 사람들을 따르다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고, 제5장 '대중의 힘'에서는 반대로 민주주의가 그럼 더 나았는지 비교해본다.
제6장 '전쟁은 왜 하나요'에서는 전쟁 중 어처구니 없는 바보짓을 했던 군대들을 살펴보고 제7장 '식민주의의 화려한 잔치'에서는 대항해시대 탐험가 중 허당들이 저질렀던 바보짓을, 제8장 '바보와 현직 대통령들도 알 수 있을 만큼 쉽게 푼 외교 이야기'에서는 거대한 덩어리인 국가간 의사소통 중의 바보짓이 불러온 문제들을 돌아본다. 그리고 제9장 '신기술에 열광하다'에서는 과학자들과 과학기술에 관련된 바보짓을 살펴보고 제10장 '미래를 못 내다본 실패의 간략한 역사'는 바로 눈 앞에 닥칠 일을 예상하지 못해 일어난 일들을 간략하게 기술하며 마지막 '바보짓의 미래'에서는 인류는 앞으로 반드시 또 바보짓을 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어떤 바보같은 일이 일어날지 예측해본다.

1999년 9월 23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발사한 '화성 기후 관측 위성'이 화성 궤도로 진입하다 연결이 끊어졌다. 이틀뒤 원인이 밝혀졌는데 당시 데이터 분석을 맡은 록히드마틴 사에서는 파운드와 피트 단위를, 나사에서는 킬로그램과 미터 단위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록히드마틴 측에서 보낸 파운드 수치를 뉴턴 수치로 환산하지 않고 그대로 입력했기 때문에 일어난 바보같은 일이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엔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실들을 규명해가고 있지만 '동시에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스케일로 망할 가능성'도 생겨났다.
이전까지는 지구에 국한되서 바보짓을 했다면 이제는 화성 기후 궤도선의 실패 사례가 보여주듯 우주에서도 사고를 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의 바보짓
인간은 반드시 앞으로도 바보짓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내기를 걸어야 한다면, 아무래도 과거에 저질렀던 것과 똑같은 실수들을 계속 저지를 것이라는 데 거는 게 현명할 것 같다.' 그래도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까 하는 소망 역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선조부터 지금까지의 인간들이 벌였던 '삽질'과 '바보짓'을 가볍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마치 친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 처럼 쉽게 풀어낸 톰 필립스의 '인간의 흑역사',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