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되면, 어른도 된다

굽이굽이 이어진 협곡을 지나며 세월의 변화를 견뎌낸 세대인 박완서 작가. 살아계신다면 100세가 가까우신 분이지만 지금은 우리 곁에 안 계신다. 책 속에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민족상잔의 비극을 목도하고, 이승만 정권, 박정희를 비롯한 군사 정권, 그리고 IMF 금융 규제가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상황파악이 제대로 안되셨던 김영삼 정권을 지나오면서 느끼셨던 냉정한 평가가 빼곡했다. 살아 계시다면 현재에 대해선 무엇이라 말씀하실지 매우 궁금하다. 워낙 사리분별이 분명하신 분이라 책을 읽다가 현 시국의 답답함이 오버랩 되면서 작가님의 생각이 더욱 간절히 듣고 싶어졌다.
젊어서는 수필집을 잘 읽었는데 요즘은 작가님 말마따나, 아무나 책을 쓰는 시대라 그런지 책을 펼치고 몇 쪽 읽다보면 이게 왜 출판이 되었는지 답답한 경우가 많아 수필집을 선택하기가 꺼려진다. 그래도 주말의 넉넉한 시간에 부담 없이 읽을 만한 수필이 없을까 책을 뒤적이다 박완서 작가님이 생각이 났고, 제목이 맘에 들어 읽기 시작했다.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이 무엇일까 듣고 싶어서였다. 어른의 모양새는 가졌으나 어린아이보다 못한 어른이 넘쳐나는 세상이고,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사람이 많은지라, 또 나 자신이 어른답지 못하거나 사람 같지 않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사람다운 사람
일제강점기와는 거리가 멀고, 민족상잔의 비극도 역사책으로만 알 뿐인 사람이지만, 적어도 새마을 운동의 시대를 거쳤고, 학교 갈 때면 가슴팍에 뭔가를 핀으로 꼭 붙이고 다녔던 시절을 지나와서 그런지 읽는 내내 오래된 유년의 기억이 말갛게 눈앞에 펼쳐져 정겨웠다. 아마 50대 이후의 독자라면 매우 즐겁게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다. 또 우리 현대사를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들어보고 싶다면 젊은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노릇’이란 말은 앞의 명사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예를 들어, ‘작가 노릇을 하려거든 제대로 해’라는 말은, 아직 작가가 되기는 멀었다는 말이다. ‘남의 비서 노릇이나 하는 주제에’라고 할 때 ‘비서’란 직업은 ‘노릇’이 붙어 매우 하찮다는 의미가 된다.
이 책의 제목,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은 작가가 직접 붙였는지, 편집인이 붙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째든 작가가 동의하였으니 붙였을 것이다. 본인이 쓴 글에 대한 겸손함과 편하게 글을 읽기를 바라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밴 제목이다. 읽는 이들에게 ‘이게 어른이다’ 혹은 ‘이게 사람이다’라고 큰 소리 치려는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박완서 작가의 글은,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을 모르고 읽으면 남자가 썼다고 할 가능성이 크다. 건조하고 투박한 듯하나 깊게 내리 꽂히는 예리함이 있다.
인간의 다중성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고, 분명한 잣대와 투철한 자신만의 작가정신을 가졌으면서도 모순투성이인 인간을 품으려는 따뜻함이 있다. 아마 작가는 자신의 글이 그러함을 알고 계셨으리라. 그래서 혹시라도 자신이 누구보다 어른인 양, 자신만이 사람다운 사람인 양 떠든다고 오해를 할까봐 제목을 이렇게 결정한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 유년을 보낸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특별히 의식 있는 독립운동가의 집안이라면 모를까, 보통 집안에서 태어난 우리는 일본이 우리 조국인 줄 알았다. 신사참배하면서 진심으로 일본이 승리하길 빌었고 궁성을 요배할 때는 가슴이 울렁거렸고, 미국과 영국은 사람의 탈을 쓴 鬼畜인 줄 알았다. ‧‧‧ 보통의 소심한 식민지 백성에 불과했던 그들은 조선이 독립할 수 있으리라는 걸 감히 상상도 못 했고, 자식 대라도 갈등 없이 일본화되어 일본 사람과 동등한 삶을 누리길 바랐다. ‧‧‧ 자유와 독립이란 당하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거여야 하거늘, 우리는 한 게 너무 없었다. 귀국한 해외의 독립운동 세력이 그나마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줬지만, 그들의 세력 다툼도 보기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3년간 동족상잔의 비극이 남긴 흔적은 다음 짧은 글로 가늠할 수가 있다. 사람이 사람답다면 서로 죽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라는 작가의 일침이 들린다.

우리의 삶
“내 졸업 앨범을 보면 한 반에 일 할 정도가 6‧25 때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고 졸업생이 그 정도니 남자들은 그 정도가 훨씬 더했을 것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유신 독재의 암울했던 모습은 다음만 읽어도 충분히 섬뜩할 것이다. 사람이 아닌 사람이 권력을 가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언제부터인지 산동네에 마이크가 설치되고 아침부터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 노래가 터무니없이 큰 소리로 온 동네를 압도했다. ‧‧‧ 살얼음판 같은 세상이었다. 학생이나 근로자, 말깨나 하는 지식인들이 툭하면 붙들려 들어가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딸의 고등학교 적 선생님 한 분도 무슨 당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더니 어느 날 같은 죄목의 두 사람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 ‧‧‧ 그 혐의가 사실이라 해도 인간의 목숨인데 어떻게 선고에서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그렇게 신속할 수 있는지 실로 눈 깜짝할 새였다.”

사람다움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그리 간단하치 않은가 보다. 그래서 사람답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사람다움을 찾아내고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작가는 그런 측면에서 글을 통해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낼 수 있는 매우 다양한 불협화음을 잘 고발하고 있다. 독자 각자가 자신의 처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사람다움을 찾아내길 바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다운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 그건 순리다.
사람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이토록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가? 책을 읽고 나서 얼굴에 웃음기는 사라졌고 머리가 묵직했다. 지금껏도 그렇게 살았지만 새삼, 어른 노릇하려는 정신 나간 짓은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먼저 사람 노릇부터 해야 하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