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유럽으로, 나도 같이 퐁당

공정거래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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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나 TV화면을 통해서 본 게 다지만, 동유럽이 가진 색채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면서도 아린 맛이 있다. 깊이 가라앉아 있어 애써 캐내지 않으면 알기 힘든 많은 사연을 담고 있어 보였다. 기회가 된다면, 육 개월 이상의 시간을 가지고 아주 천천히 그곳을 유랑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그런 터라 혹시 하고 책을 뒤졌다. 거의 틀에 박힌 여행 가이드로 채워진 여행 관련 책은 매력이 없다. 주제가 분명하고,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솔직한 감동이 담겨, 글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그 장소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만한 여행 에세이를 찾았다.

유럽으로, 함께

우선, 책 제목이 눈에 띄었다. 결정적으로, ‘조용하고, 소극적이고, 예민하고, 움직이기 싫어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그야말로 내향적인 기질의 완전체’인 사람이 다녀와 쓴 여행기라니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거의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 그녀의 행보는 나의 그것과 매우 흡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혹시 가지 못할 수도 있는 그곳을 한 권의 책을 통해 지금 가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거였다. 그리고 靜中動하며 때론 일탈의 묘미도 부릴 줄 아는 이 여행자와의 여행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오묘한 매력이 넘치는 체코, 도도한 오스트리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해도 이의가 없을 크로아티아, 아직도 아프고 슬픈 과거를 이고 살아가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그리고 푸른색과 하얀색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이라고 느끼게 해 주는 에게해의 그리스. 이들 나라를 조급하지 않게, 오롯이 나만의 시간으로 채우며, 그들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먹고 마시며 배부를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독자는 저자와 함께 여행을 하다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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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뉴스

그녀는 여행 전에 미리 여행지에서 무엇을 할지를 매우 꼼꼼하게 계획을 했고, 그것을 실행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에서는, ‘사람이 거의 없을 새벽 무렵, 물안개가 피어오른 호숫가를 산책하고, 오후에는 산비탈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마을을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기’, ‘해가 질 쯤 호수 가운데서 모터보트 타기’, ‘저녁에는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따뜻한 오스트리아 전통 수프와 슈니첼 먹기’ 등을 계획했다.

그런데 뭐든 계획한 대로 되던가! 더구나 여행에서 날씨라는 변수는 미리 계획을 할 수가 없다. 비가 와버렸다. 그래도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덕분에 맑은 날에는 결코 볼 수 없는 신비로운 풍경과 마주한다. 비에 흠뻑 젖으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할슈타트의 구석구석을 누빈 이후, 여행을 가기 전에는 비 맞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데서 180도 달라져, 오히려 비가 오면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할슈타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맞이했고, 자신을 드러냈으며, 새로운 그녀를 만나게 해 주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한가로이 지낼 수 있는 한적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잘도 찾아다닌다. 그리스 ‘이드라 섬’도 그 중 하나다. 그곳엔 어디서도 보기 힘들 만큼 나긋나긋한 고양이들이 있어, 평소 고양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그녀조차 고양이를 주기 위한 빵을 준비해서 돌아다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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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뉴스

3일 머문 곳임에도 그녀는 자신만의 아지트인 전망대를 찾아내고 틈만 나면 거기로 가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마시며 눈앞에 펼쳐지는 새파란 지중해의 물결, 그리고 바다 사이로 들락날락하는 배들의 모습을 눈으로 찬찬히 쫒곤 했다. 그런가 하면 인적이 드문 작은 어촌 마을인 ‘카미니’의 붉은 흙길을 걷고 또 걸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한가로이’하는 여행을 나는 진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그 느림을 진짜인 듯 만끽할 수 있었다.

여행의 재미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동굴투어에서 동굴안의 콘서트 홀을 보았을 때, 가슴이 먹먹했다. 토스카니니가 오케스트라를 끌고 이곳에서 연주를 했다고 한다. 인공의 콘서트 홀이 아닌 자연이 만든 콘서트 홀의 음향이 얼마나 기가 막힐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렸다. 거기서 류블랴나로 돌아가기 위해 헤매다 친절한 할아버지 덕분에 승용차를 얻어 타게 된다. 차 안에서 언어의 장벽을 보디랭귀지 등으로 극복하며,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낯선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물이 안 나온다고?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보의 숙소에서 그녀는 물이 나오지 않는 당혹스러움에 직면한다. 그렇다고 여행을 그만 둘 수는 없다. 그렇게 그녀가 둘러본 불가리아의 전통마을 풍경은 한국과 매우 흡사했다. 어떤 역사학자는 불가리아가 부여족이 넘어가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는데, 사진 속의 풍경을 보니 왠지 그 말에 설득당하고 싶었다. 거기서 만난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 나는 배시시 웃고 말았다. 눈치 없이 들이대는 사람을 경계하고 불편해하며 그것을 얼굴에 드러내고 마는 그녀에게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또 그런 자신을 글에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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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퐁당, 동유럽’ 표지 ⓒ이담북스

2015년에 출간된 책이니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세상이 하도 빠르게 변하고, TV에서도 심심치 않게 동유럽을 비춰주고 있어 지금은 그녀가 경험했던 그곳이 변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지마다 마지막에 소개하고 있는 ‘가는 방법’이라든가, ‘돌아다녀 볼 만한 곳’, ‘먹어볼 만한 음식’ 등에 대한 팁은 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꽤 유용할 것 같다. 자신이 경험했던 어려움, 그 속에서 찾은 노하우도 상세히 잘 적어 두었으니 참고한다면 여행 준비가 좀 더 쉽지 않을까 싶다.

일반적으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관광코스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새로운 여행지를 개척하여 즐기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꽤 도움이 될 것이다. 읽으며 자신의 여행을 계획해 본다면 좋은 아이디어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한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여행을 준비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좋은 자극제가 될 만한 책이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그녀는 꽤 괜찮은 이야기꾼이다. 그러니 직접 여행을 할 상황이 못 되어 간접적으로나마 동유럽을 조우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보기에 매우 좋은 여행에세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한다.

공정거래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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