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의 끝에는 무엇이 있나

매일 경험하는 것의 힘은 조용하지만 강하다. 젊은 세대는 과거 고성장 시대의 아버지 세대처럼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개인은 매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노동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은 일이고, 나는 나, 라고 깔끔하게 자신의 일과 정체성을 분리하기는 힘들다.
그러다 보면 생업과 내가 지키고 싶은, 혹은 내 것으로 생각했던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각자의 경제적 사정이나 형편과 자유나 개성, 혹은 인간성에 대한 갈망이 복잡하게 얽힌다. 그런 상황을 깔끔하게 마름질하는 것은 보통 개인의 능력 밖이다.
포기하지 않는 일상의 변화
책 <9번의 일>은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주인공을 통해 일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통신회사 설치 기사로 거의 30년을 일한 주인공은 회사에서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3번째 재교육을 앞두고 있다. 권고사직 권유를 받지만, 나가지 않고 버틴다. 결국 교육에서 최하등급을 받은 그는 타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 낯선 영업 일에 뛰어든다.
회사에서는 얼마 후 그를 다른 지방 소도시로 보내지만, 그는 계속 밀려나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수험생 아들의 학비, 대출금 이자와 원금, 양가 부모의 병원비와 집수리비. 생계 문제가 달려있긴 하지만, 그를 옥죄는 여러 의무와 도리가 일을 그만두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기다리면 다시 제자리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럼 그는 밀려나고 밀려나면서도 왜 일을 그만두지 않을까.
밀려나지 않으려면 남을 밀어낼 수밖에 없다. 먹고 사는 것이 그 자체로 경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는 ‘자신의 모습이 아닐 거라 믿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십상이다. 소설은 그저 성실할 뿐이었던 주인공이 결국 어떤 결말에 닿는지 이야기하면서 일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자신의 일을 발견하고자 하거나 이미 발견한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