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셈법을 알려줄 인류 경제 이야기

책 읽다가 이렇게 신나보기도 참 오랜만이다. ‘경제도 쉽고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소명이라는 저자 소개가 티끌만큼도 거짓이 아니었다. 세계사를 경제로 풀어내니 정말 재미있었다. 사실, 역사란 인간이 먹고 살아온 기록이니, 경제사는 곧 인류 역사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먹고 사는 문제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라 인류가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인류의 먹고 살아온 이야기
박장대소를 하기도, 실실 웃기도, 무릎을 치기도, 마음이 아파 한숨을 쉬기도 하며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이었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뒤지지 않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어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정말 재미나면서도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류의 먹고 살아온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꽤 쓸모 있는 상식을 풍성하게 얻고 싶다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읽기를 권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도 독서를 제법 하는 아이라면 읽을 수 있을 만큼 쉽다. 재밌다. 유쾌하다. 그리고 유익하다.

특별히, 상대적 결핍의 시대에 살며 불평과 불만, 우울과 분노를 느끼는 자신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자기만 배부르겠다고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인간의 슬픈 경제사를 유심히 살폈으면 좋겠다.
안락한 삶
저자의 말을 빌면, 오늘날 우리, 평범한 우리는 17세기 유럽의 귀족보다 부유하고 안락한 삶을 누린다. 어느 정도냐면, 300년 전 귀족이 하인 200명을 부리고 말 50필을 거느리며, 대규모 농장을 소유하고 살던 것과 비슷하단다. 교통통신의 발달은 세계 어느 나라 음식이라도 한국에서 먹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클릭 한 번으로 찾아낼 수 있는 지식의 분량은 현인 1,000명의 지식과 백과사전 수십 권 분량에 달한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이라고 투덜대지만 사실 300년 전 어떤 왕이나 귀족도 이렇게 빠르게 이동하지 못했다.
이렇게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나 그것을 누림으로 여기지 못하여 불만스럽다면, 그 사람에게 저자의 이야기는 매우 큰 도전과 깨달음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을 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굴곡진 인류의 드라마가 이어져왔는지 알게 된다면, 잠시일지 모르나 지금의 누림을 감사하고 자신이 가진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간직하려고 하지 않을까 싶다. 지속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중국인들은 어쩌다 온 세계에 퍼졌을까? 가끔 궁금했었다. 전 세계를 유랑했던 민족으로 유대인을 꼽는다. 그런데 책을 보니 중국인도 만만치가 않다. 쿨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영어로 coolie란 저임금 계약노동자를 가리킨다.
19세기 초, 열강의 침략에 속수무책이었던 청의 황실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 특히 2차 아편전쟁에 패한 후 청나라는 자국민들이 해외로 팔려가는 것을 공식 허용했다. 겉으로는 이주권을 부여한 듯 했으나, 실상은 노예무역선에 이들을 짐짝처럼 실어 태평양을 지나 아메리카대륙 등지로 데리고 갔고, 거기서 그들은 흑인 노예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들은 북미, 남미, 아프리카, 호주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지금 어느 나라를 가든 화교가 있고 차이나타운이 있는 것이다.

쿨리의 계약 기간은 8년인데 계약기간을 다 채운 경우는 많지 않다. 중간에 다치거나 병드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다.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최소 100만 명 이상의 쿨리가 공급되었고, 수십만 명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무엇보다, 미국 대륙횡단철도는 이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공사에 투입된 쿨리가 만이천 명인데 그 중 삼천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뚫은 대륙횡단철도는 미국의 경제 지형을 바꾸어 놓았으며, 오늘의 미국을 있게 했다. 한국인들 못지않게 악착같이 자식 교육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중국인들이다. 그들이 그런 이면에는 이러한 뼈아픈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꼰대
이제 중늙은이지만, 노인들이 옛날 일을 들먹이며 젊은이를 나무라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살았던 세상을 젊은이들은 살아 본 적이 없으니 말해야 소용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마음이 이해는 된다. 전쟁의 소용돌이, 가난의 굴레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풍요로움을 당연히 여기는 세대가 알았으면, 그래서 좀 힘들다고 징징대지 말고 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되면 안 한 만 못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 드신 독자라면, 그리고 주변에 풍요를 당연히 여기고 누릴 줄 모르며 퉁퉁거리며 사는 젊은이가 안타깝다면, 슬그머니 이 책을 책상에 올려놓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차피 말해도 깨닫지 못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볼 눈이 있고 들을 귀가 있어, 인류가 먹고 살아온 역사가 얼마나 흥미진진하면서도 아리고 슬펐는지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고 힘을 내어 일어설지도 모른다.

어릴 적, 명절이 되면 우리 집에 각설탕이 선물로 들어오곤 했다.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푸하하’ 웃을 일이다. 설탕이 선물이라니 말이다. 불과 50년 전 과거의 한국이다. 14세기에 설탕 1Kg은 소 두 마리 값이었다. 지금처럼 소가 흔하던 때가 아니라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한 마리에 못해도 5천만 원은 되지 않을까? 그럼 설탕 1Kg에 1억인 셈이다. 지금은 대략 천원이 조금 넘는다. 왜 우리가 인류 역사 이래 가장 풍요로운지를 말해 주는 단적인 예다.
사람은 비교하며 자신을 가늠하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절대적 기준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줏대를 가지고 사는 사람을 보면 무척 존경스러운 것이다. 그런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아우라가 흐른다. 그런데 어차피 비교하며 사는 인생이라면,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비교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셈을 하는 게 똑똑한 것이다. 내 옆의 10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비교하기보다 14세기, 설탕이 비싸서 구경도 못했던 시절의 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늘 내가 누리는 것의 가치에 눈을 뜨는 것이 잘하는 셈법이다. 넉넉함의 기준을 바꿨다고 누가 시비를 걸 일도 없다. 그것으로 내가 부유해지고 어깨가 펴지며 새로운 도전을 할 힘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