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한 '기회' 사재기 전략

한국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부를 부당하게 빼앗아 탐욕을 누리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들을 보통 재벌이라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이런 거대한 부를 쌓아 올린 부자들을 슈퍼리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부를 빼앗아 쌓아놓은 돈의 산 정상에서 향락을 즐기는 부자들과 그를 보며 절망에 빠져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도는 익숙하게 떠올릴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사람들은 상위 1% 부자들의 탐욕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2011년에 발생한 월가점령시위의 구호인 '우리는 99%다'는 그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상위 1%의 도덕적 책임을 묻고 소득세율 인상과 같은 실재적인 제재를 가하는 분위기 속에서 상위 1%보다 상위 20%를 주목하라고 외치는 이가 있다.
소득의 불평등
이코노미스트 지의 올해의 책에 선정된 ‘20 VS 80의 사회’의 저자 리처드 리브스는 소득 상위 1%와 나머지 99%의 구도에서 벗어나 상위 20%의 ‘중상류층’과 나머지 80%의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에서 상위 20%의 소득은 1979년에서 2013년 사이에 4조 달러 가량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에 하위 80%에서는 3조 달러 가량 증가하였다. 그 와중에 하위 80%간의 소득 차이, 즉 불평등은 전혀 변동이 없는 반면 소득의 불평등은 상위 20% 선을 기점으로 그 위쪽에서 발생한 것을 지적한다. 물론 상위 1%에서 심화되는 불평등을 간과해도 된다는 주장은 아니며 그 역시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중상류층의 정치권력이 비대하게 커진 것에 주목한다.

최상류층 역시 정치인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중상류층의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 제도를 장악하고 노동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 또 중상류층은 공공 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싱크 탱크 연구자, TV프로듀서, 교수, 논객이 대부분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중상류층 자신들이 하위층의 사람들과 뚜렷이 분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지난 월가점령 시위의 참여자 중 3분의 1 이상이 연 소득 10만달러가 넘는 중상위층이었다는 사실과 미국의 진보 지식인들조차 중상류층을 상위 1%의 최상류층에게 기회와 부를 빼앗겨 짓눌리고 있다고 묘사한 사실이 그를 뒷받침한다.
책은 상위 20%와 그 외의 격차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나타난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 주변에 중상위층이 모여 살면 자연히 집값이 올라 하위 계층이 접근하기 어려워 진다. 더 나아가 토지용도변경을 제한하여 다세대주택이 들어서는 것 조차 거부하여 하층민의 접근을 원천차단한다. 같은 학교에 다니더라도 여유가 있는 중상위층 아이들의 학습능력 및 학과외 경험이 더 풍부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상위 1%보다 상위 20%를 주목하라
자녀가 대학을 갈 시기가 되면 해당 대학의 입학사정관 출신의 어드바이스를 구매하고 아이의 부모가 해당 대학의 졸업생이라면 동문 자녀를 위한 특별전형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교육의 격차, 학벌의 대물림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후 취업에서도 격차는 나타난다. 미국에서 좋은 직장을 구하려면 인턴경험이 필수인데 인턴은 공개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사람에 따라 알음알음 구하니 한 다리 건너면 대부분 연결되어 있는 중상위층 자녀들이 독점하게 될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하위층의 청년이 인턴을 구하더라도 대부분의 인턴은 무급이므로 생활비를 따로 구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중상위층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중상위층이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이득을 쥐어주는 일련의 행위들을 ‘불공정한 기회 사재기 전략’으로 표현한다. 하위 80%의 사람들 중 누군가가 상위 20%로 진입한다는 것은 상위 20%의 누군가가 밑으로 추락했다는 것을 뜻한다. 중상위층은 이를 두려워해 하위층의 사람들이 벽을 넘을 기회를 애초에 원천봉쇄를 하는 것이고, 저자는 20%선에서 추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일련의 행위들을 유리바닥을 만든다고 표현한다. 이 유리바닥은 누군가에겐 견고한 유리천장으로 작용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일련의 예시를 보면 기시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정권이나 이번 정권이나 권력자들이 자녀들에게 건넨 불법적인 혜택들이 온 나라를 들썩였다. 그 외에도 학군이나 신도시 등에 따른 계층 구분, 부유할수록 유리한 입시제도 등을 보면 저자가 지적하는 기회의 사재기가 이미 우리나라에도 만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최근엔 언론에서도 최상위 1%가 아니라 상위 10%와 나머지의 소득격차를 주목하는 기사를 조금씩 보도하고 있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의 자료에 따르면 소득 상위 1%와 10%의 소득집중도는 각각 1996년에 7.8%와 35%에서 2016년에 12.2%와 43.3%로 증가하였다. 더불어 2019년도 2분기 기준으로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격차가 5.3배로 사상 최대치에 달했다는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소득격차는 더 이상 상위 1%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씩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상황의 해결책으로 상위 20%의 변화를 주장한다. 중상위층이 손해를 보더라도 더욱 공정한 나라가 되기 위해 사재기한 기회들을 포기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 역시 529플랜개혁사태(오바마 정부 시절, 중상위층이 주로 사용하는 자녀의 대학학비를 위한 세제혜택이 있는 학자금 적립프로그램을 개혁해 세제혜택을 없애고 공공부분의 예산을 확충하려고 하자 중상위층이 벌떼같이 일어나 반대를 해 법안을 좌초시킨 사건)와 같은 예시를 통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나는 평일에는 불평등 문제를 비난하고, 주말과 저녁에는 불평등 강화에 일조해”라는 동료의 말을 인용하여(동료 역시 당연하게도 중상위층이다.) 중상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를 위해 다른 아이들의 기회가 박탈당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인지하여 마음가짐과 태도가 달라질 것을 주문한다. 물론 이런 감성적인 호소 뿐만 아니라 ‘인적 자본 개발의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어서 시장에서 인정되는 능력이 더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하기‘와 기회 사재기를 줄이기 ’를 위한 일곱가지의 실질적인 조치를 제안한다.
부의 격차와 기회의 양극화에 대한 기존의 담론에 지친 독자라면 리처드 리브스의 새로운 담론을 담은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