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정관념의 역사

공정거래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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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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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자주 보이는 '프레임'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등장하기 사작한 이 단어는 지금에 와서 정쟁을 보도하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단어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언어인지학자인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자신이 제시한 프레임이론에서 프레임을 '특정한 언어와 연결되어 연상되는 사고의 체계'라고 정의하였고 '현대인들이 정치ㆍ사회적 의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 틀'이라고도 표현하였다.

프레임은 우리가 듣고 말하고 생각할 때 머릿 속에서 항상 작동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를 먼저 규정하는 진영이 정쟁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가게 되며 반대측에서 이를 반박하기 위해 언급할 때 마다 오히려 프레임을 강화하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프레임은 정치의 영역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사회 생활에서, 심지어 개인의 사고에서까지 영향을 주는 영역이 막대하다.

네모난 사각형의 벽

사람은 프레임에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역사와 문화가 만든 프레임에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오롯이 자신의 주관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프레임의 간섭을 피할수 없다.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대한민국 20대를 파헤친 저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회학자 오찬호는 책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를 통해 이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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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프레임을 사람들을 둘러싼 네모난 사각형의 벽으로 표현한다. 벽이라고 해서 일종의 규제나 억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벽은 '한 사회의 역사, 그 역사에 대한 인식, 그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문화, 그 문화에 바탕을 둔 교육 수준과 관용의 정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토대로 이루어진 기술혁신과 정치 및 경제 체체의 진보를 의미한다.' 개인이 이 벽을 넘어서는 사고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신한 운송수단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20세기 전후, 세계의 석학들이 모여 100년 후 미래사회를 위해 준비할 것으로 '말똥 문제 해결'을 선택한 것, 콜럼버스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대륙을 인도라고 믿은 것, 성서에 공룡이 나오지 않는 것 역시 당시의 네모난 벽이 그 정도의 공간만 허락했기 때문이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길을 걸으면서 혹은 횡단보도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종종 볼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보며 매너가 없다고 손가락질 한다. 버스정류장 주변 10m의 공간은 금연구역으로 여기서 담배를 피운다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금연종합대책에 따르면 2025년부터 모든 건축물에서 실내흡연실이 폐쇄될 것으로 전망된다. 간접흡연에 대한 위험성이 사회에 알려지면서 금연구역이 늘어나고 있고 흡연자들의 흡연권보다 비흡연자들의 혐연권이 우선한다는 판결도 내려졌다. 흡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아지면서 흡연자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럴 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담배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지금 30대가 어린이었을 때 보았던 아버지나 삼촌, 동네 형 등이 담배연기로 도너츠를 만드는 '묘기'는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는 고속버스의 앞좌석 등판에 뭍어있는 작은 플라스틱 구조물은 '재털이' 이다. 1995년 아시아나 항공이 세계 최초로 모든 노선의 금연비행을 시행하기 전까지 기내흡연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저자는 담배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어떤 기준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변화한 것이고 자주 노출되다 보니 당연한 것이라 여겨지게 되었을 따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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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대한 저자의 견해 역시 눈길을 끈다. 영국 총리를 지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그럴 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했듯이 근래 들어 통계를 그대로 수용하지 말고 유의깊게 살펴야 한다는 견해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통계는 어떤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사실로 기능한다. 저자는 같은 수치더라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그 수치의 무게와 의미는 변화무쌍하다고 강조한다. 보통 0.3%라는 수치는 거의 의미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 수치가 '대한민국 국민의 자살률'이라면 무게감이 달라진다. 특히 OECD 회원국 평균보다 두배가량 높은 수치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반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의 비율이 2010년 이후 4년간 56%나 증가했다면 이는 무척 고무적인 결과일 것이다. 이렇게 크게 증가한 숫자가 전체 육아휴직자의 4.5%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자는 이런 프레임에 탈출하기 위해 자신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을 의심하라고 주장한다. 그를 통한 비판적 사고를 역설한다.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은 곧 고정관념이다. 같은 와인을 가격만 달리 붙여 시음을 했을 때 비싼 쪽이 더 맛있다고 선택하는 것은 비싼 것이 더 좋다는 고정관념의 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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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예술가 로버트 뱅크시(Robert Banksy)가 자신이 만든 마트 카트와 비슷하게 생긴 도구를 끄는 원시인이 그려진 돌조각을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아무 문제 없이 8일간 전시했던 것은 박물관, 특히 영국의 대영박물관 안에 있는 것은 모두 유물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의 발현이다. 이 유물이 가짜라는 것은 뱅크시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사실을 알리기 전까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놀랍지 않은가.

더불어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치적 시민'이 될 것을 주문한다. 우리의 삶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시민이 되라는 것이 정당에 투신해 의원 자리를 노리라거나 당장 특정 시민단체에 들어가 머리에 붉은 띠를 묶고 시위를 주도하라는 등의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정치적 시민이 되기 위해 마음가짐을 조금만 바꿔달라,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해보자는 소박한 주장이다. 그것은 대안이 없어도 비판을 해 볼것,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과 내 행동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자기검열을 하지 말 것,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말이 부담스러워 '중립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 것이 그것이다.

비판적 사고

이들은 비판적인 주장을 원천차단하는 마법의 문장들이다. 평범한 시민이 어떤 문제를 감지하고 주장하는데 있어 대안까지 마련해오라 한다면 몇명이나 주장할 수 있겠는가. 대안을 만드는건 정치인들의 일인 것이다. 시민은 문제를 제시하면 그뿐이다. 언행일치 역시 마찬가지다. 취준생이 과도한 스펙을 요구하는 기업들을 비판하면서도 자신 역시 취업준비를 안할 수는 없다. 치열한 사교육을 비판하기 때문에 자기 자식의 사교육도 칼같이 끊어버릴 부모가 얼마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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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표지 ⓒ동양북스

공자는 언행일치가 군자의 덕목이라 하였다. 쉽게 도달할 경지가 아닌 것이다. 더불어 말과 행동이 다르다 하여도 말의 논리가 틀린것이 되진 않는다. 균형잡힌 시각은 보통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쪽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측에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문제가 있는 측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측에 요구하는건 결국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과 다름 아니다. 한쪽으로 치우쳐졌다고 주장한다면 반대측과 토론하여 절충점을 도출하면 되지 지레 겁먹어 스스로 검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알면서 외면하거나 차마 인지하지 못했던 '불편한 부분'을 파해치는 사회학자이다. 그의 이력 답게 이 책 역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행동과 생각들을 당연하지 않다고 꼬집는다. 혹자는 '너무나 한쪽으로 편향된'사람이라고 외면할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프레임에 갇혔던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공정거래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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