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외줄 위에서 써 내려간 메모들

얼어붙은 골목길에 놓인 네 개의 여행 가방. 이 짐가방에 서울살이를 시작한 한 부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콜롬비아 남편과 한국인 아내의 첫 보금자리는 서울 이태원이다. 남편은 길바닥에 짐을 내려놓고 부동산에 열쇠를 가지러 갔다 와야 하는 상황이 의아하다.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보고타에서 같은 행동을 한다면 순식간에 가방을 도둑맞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는 서울에서 겪어낸 1년간의 일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기록했다. 책 <한국에 삽니다>의 원제는 ‘Corea: apuntes desde la cuerda floja'로, ‘흔들리는 외줄 위에서 써 내려간 메모들’이라는 뜻이다.

‘낮 동안 내 기분은 외줄 위에 선 것처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출렁거린다. 월급이란 걸 받아본 지 5년이 되었다. 5년. 한때는 연금과 건강보험도 있었다. 아, 끔찍해라, 이 일기가 예배당의 의자가 되어가고 있다. 불평을 늘어놓다가 눈물 콧물 흘리며 끝나는 곳. 정말이지 고아가 된 이 기분을 진정시키는 데 겨울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p.28)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흔들리는 외줄 위에 선 것처럼 위태롭고 불안한 상황을 감내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이 책은 외국인으로서 경험하는 부조리와 불평을 고발하거나 한국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지적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보다 특유의 냉소와 우울이 배어나는 개성적인 문체로, 새로운 풍경이 일깨우는 개별적인 기억과 마음의 무늬에 대해 이야기한다.

콜롬비아
콜롬비아와 한국의 시차는 14시간이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것은 종말에 14시간 더 다가간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14시간만큼 미래에 머물면서 친구들을 만나고, 결혼식에 참석하고, 새로운 직장에 나가고, 아내와 시간을 보낸다. 가끔은 버스에서 옆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광고에서 어떤 상품을 파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순간의 ‘평온한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자신이 알고 지내온 사람, 언어, 문화로부터 단절된 고독한 삶. 저자는 이런 삶이 가끔 납으로 된 옷을 입은 것만큼 무겁지만, 사실 콜롬비아에 살 때 열망했던 것이라고 고백한다. ‘주름 속에 존재하는 것, 타인이 된 것 같은 기분.’ 어쩌면 그가 느끼는 이방인의 고독과 평온은 익숙함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종종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