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잃는 것이 죄가 되는 곳

주민 모두가 끔찍한 굶주림에 허덕이던 어느 날, 고양이를 쫓아갔던 아이가 실종된다. 그리고 20년 후, 기차선로 옆에서 살해당한 아동의 시체가 발견된다. 구소련에서 일어난 아동 연쇄살인 사건의 시작이었다.
책 <차일드44>는 구소련을 배경으로 전직 KGB였던 레오가 사건 해결을 위해 활약하는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다. 전 세계에서 400만 부가 팔렸고, 맨부커상에 후보로 이름을 올린 작품이다. 저자인 롭은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일약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3부작의 문을 여는 이 작품은 실제 구소련에서 일어났던 아동 연쇄살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상부의 지시대로 작전을 수행하던 주인공 레오는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조직에 충성하고, 인정받으며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였던 그의 생활에 실낱같은 의심이 끼어든다. 조국을 중심으로 자전하던 그의 삶이 궤도를 벗어나는 신호탄이었다.

인간 내면
레오가 싸워야 할 대상은 수수께끼 같은 범인뿐만이 아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 충성의 대상이었던 국가에 정면으로 대항해야 한다. 레오의 조국, 소비에트 연방은 범죄가 없는 ‘지상낙원’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인 사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사건들은 해결되었다는 명목 하에 조작되거나 혹은 은폐된다.
‘국가의 적은 단순히 국정 운영을 방해하는 자들, 스파이들, 산업 파괴자들뿐만 아니라 당의 노선을 의심하고, 도래할 새로운 사회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해당된다.’ (p.36)

소비에트 연방은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는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들의 캐치프레이즈는 대외선전이자 내부 작동원리 그 자체다. ‘믿음을 잃는 것이 죄’가 되는 사회에서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까지 걸 각오가 필요하다. 레오는 그 고독한 길을 우직하게 걸어간다. 레오가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은 사건의 공범인 국가의 허위와 실체를 폭로하는 일이기도 하다.
묵직한 주제의식과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캐릭터 플레이, 그리고 긴박감을 놓치지 않는 전개까지. 냉혹함과 뜨거움을 함께 가진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