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 만나는 화가들의 이야기

‘왜 책 제목이 이렇지?’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든 생각이다. <들어가며>에 그 답이 있었다.
이 책을 펼친 당신은 예술가의 작품 탄생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방구석에서 낄낄대며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미술사적 의의가 아닌 예술가의 삶에서 ‘왜 그런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가슴으로 공감하는 경험을 선물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 말에 저자의 책 쓴 동기가 분명히 드러났고, 이것이 독자에게 전달이 된다면 이 책은 확실히 제목대로 독자에게 ‘방구석 미술관’을 제공할 것이었다. 목차만 봐도 재미가 있을 듯했다.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내 공간은 미술관이 되는 것을 넘어, 작가들의 삶이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극장이 되었다.
예술은 이론이 아니다. 느낌이다. 남이 뭐라고 하든지 내가 느끼는 것이 답이다. 또 그것은 매번 다르게 변한다. 그래도 괜찮다. 예술은 우리의 변덕을 전혀 개의치 않고 다 받아준다. 예술은 창작이고 창작의 세계는 열린 세계이기 때문이다. 규정을 정하여 그 안에 예술을 가두는 순간 예술은 예술이 아닌 것으로 변한다. 따라서 독자는 ‘방구석 미술관’을 쓴 작가의 글에도 매이지 말고 책 속의 화가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마 작가도 독자가 그러길 바랄 것이다.
어릴 적, 예술을 하는 사람은 삶이 깨끗해야 한다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고, 다른 누구를 말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사람에게 깨끗함을 기대하는 것은 동화의 나라에서나 가능한 것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잠시 당황스럽기는 했으나 깨끗하니 더럽니 하는 잣대 자체가 무의미함을 발견하고 나니, ‘Yes 아니면 No’, ‘좋거나 싫거나’, ‘맞거나 틀리거나’가 너무도 분명하던 성격이 아주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리 간단한 성격은 아니지만, 20대를 돌아보면 아주 많이 달라진 셈이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에드바르트 뭉크의 여성에 대한 자기식의 두려움도,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의 노란색 향연이 압생트라는 독주가 만들어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에곤 실레가 19금 그림에 천착했던 이유도 목 넘김이 아주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거뜬히 삼켜낼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내를 두고도 자기가 매달려 한 여자를 불륜녀로 만들고는, 자신의 애정이 식자 아무 말도 없이 여자를 떠나버린 바실리 칸딘스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그의 그림은 대부분 그 여자를 버린 후에 그려진, 자로 잰 듯 반듯한 기하학적 도형으로 채워진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그림들이 싫어졌느냐? 아니다.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감정을 자각한 칸딘스키의 원래 모습이 그의 후기 작품이고, 그렇다면 후기 작품이야말로 그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차가운 이성만이 느껴진다고 소감을 말한 작가의 평가와 이견이 있는 셈이다. 한 여자에게는 매우 나쁜 자식이었는지 모르지만, 기하학적 도형으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동심이 느껴져 편안하다는 게 개인적인 소견이다.
드가는 왜 무용수의 그림을 그렇게 많이 그렸을까? 자주 궁금했다. 그런데 저자는 에드가 드가에 대한 글의 소제목을 <알고 보니 성범죄 현장을 그렸다고?>라고 했다. 자못 궁금했다.
발레가 대중화된 지금과는 달리, 드가가 살던 당시 발레는 부유층들은 몸 버린다고 근처도 가지 않았다. 반면, 빈민가 여자들이 출세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엄마 손에 끌려 발레단에 들어간 소녀들은 가혹한 훈련을 받았다.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 그 이후엔 계속 공연연습, 이렇게 한 주 6일을 살았다. 그런 연습과정에서 불구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발레리나가 되면 당시 교사의 8배가 되는 연봉을 받았다.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면 발레리나가 된다는 것은 성공신화가 되며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그들은 결국 귀족 남자들의 노리개가 된다. 고급 창녀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스폰서라는 개념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런 발레리나의 슬프고 어두운 그림자를 스스로 목석이 되기를 선택한 드가는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목석? 그렇다 드가는 예술을 위해 사랑을 포기한 남자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는 평생 여성들, 주로 하류층 여성들을 그리는 것으로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운다. 그 대표적인 대상이 바로 발레리나였다. 치근덕대지 않고 오롯이 자신들을 그리기만 하는 신사 예술가 드가를 발레리나들은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그림을 그릴 때 잘 도와주었다고.

폴 세잔의 그림, 하면 떠오르는 것이 ‘사과’다. 또 뭔지 모르지만 고흐와 상통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해 왔다. 글을 읽으며, 그것이 고흐와 세잔 두 사람 모두 특별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을 한 것 때문이 아닐까 나름대로 추측을 해 보았다. 그는 모든 사물을 기본 도형으로 보고 그것을 통해 자연의 액기스만 화폭에 담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볼 때면, 뭉툭함과 비밀스러움이 느껴졌고, 무슨 질문인지도 모를 질문이 생겼던 것인가 하는 혼자만의 결론을 내려 보기도 했다.
저자는 글을 재미있게 쓴다. 아직 숙성되지 않은, 그저 글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을 짜깁기 한 글이 아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말하고 있다. 그의 글 속 화가들은 불필요하게 과대 포장되지 않았다. 우리와 같은, 아니 어떤 의미로는 우리보다 훨씬 결핍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의 걸작들은 그런 결핍에서 고통 받으며 탄생한 것이라는 것을 잘 표현해 주었다. 진주가 진주조개 속에서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읽어보기를 권하겠다.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핍이나 실패로 인해 의기소침해 있는 사람에게도 이들의 삶은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러니 만약, 그렇다면 책을 펼쳐보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