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 속 생명과 죽음의 동거

나는 도시가 편하다. 하지만 농사를 짓거나 목축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10년 전 쯤, 5~6평 남짓한 텃밭을 가꿔본 후에 농사는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일임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최근에 기계화로 인해 사람의 노동이 많이 대체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농촌과 어촌의 삶은 힘들다.
최근 어떤 계기로 농민운동을 하며 친환경 농사를 짓는 분과 잠간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AI나 컴퓨터 시스템을 적용한 농법이 계발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하여. 한 마디로 그렇게 농사를 짓는 것은 농사가 아니라며, 그런 시스템으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공산품과 같다고 했다.
글쎄, 잘 모르겠다. 급변하는 기술 혁명이 기존의 농사법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부들의 일자리를 지키느라 자동차 산업이 크지 못해 결국 기술을 다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독일에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긴 영국이 생각났다. 아니면, 그의 말대로, 농산물은 땅의 기운과 햇빛과 바람과 비가 만들어내는 산물이며, 그것을 함부로 조작하는 것은 인간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도시로 나갔다가 시골로 돌아온 젊은이다. 아버지를 도와 소와 양을 키우며 글을 쓰는 작가다. 내용은 약 6개월 동안의 목축 적응기다. 문장이 매우 간결하여 읽기가 수월하다. 중간 중간에 소와 관련된 신화, 역사 등이 잘 들어가 있어 꽤 흥미롭다.
귀농을 생각한다거나, 농촌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읽어보고 현실을 저울질 해 보면 좋을 것이다. 혹은 복잡한 일상 속에서 머리를 식히고 싶은 이에게도 추천한다. 생명이 태어나기도 때로 죽기도 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매우 원초적인 인간의 희로애락은 마치 뜨겁고 얼큰한 국물로 속을 해장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미 소가 분만하면 ‘초유’가 나오는데, 걸쭉하고 노란 그것을 바로 송아지에게 먹여야 목숨이 유지되고 감염이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항체가 생긴다고 한다.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신속하게 폐에 찬 양수를 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단다. 소꼬리는 야외 목초지에서라면 파리도 쫓고 열도 식히고 동료들과 의사소통의 수단도 되기 때문에 매우 요긴하다. 하지만 우사에서는 똥이 들러붙어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갓 태어난 송아지가 더러운 꼬리를 어미젖으로 알고 빨다가는 나중에 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양은 멍청해서 돌보는 이도 못 알아본다고 한다. 매일이 새로운 날이고, 매일 아침 주인을 보고 놀란다. 그만큼 기억력이 나쁘다. 그래서 저자의 아버지는 양사에 항상 라디오를 켜 놓는다. 양이 사람 목소리에 친숙해져서 주인이 와도 안 놀라게 하려고 말이다. 양은 풀어놓을 때도 소규모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미와 새끼가 떨어질 수 있는데 그러면 서로 못 알아봐서 새끼가 버림을 받을 수도 있단다. 그런가 하면 소에 비해 양은 새끼를 아주 쉽게 낳는다.

저자는 돼지고기 먹기를 끊었다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식용 돼지 사육은 자연과 완전히 분리된 농사다. 평생 양돈장에서 산다. 어미는 새끼를 낳은 후 몇 주 동안이나 모로 누운 채 분만 틀에 갇혀 지내야 한다. 새끼에게 안전하게 젖을 먹이기 위해서다. 안 그러면 제 새기를 잡아먹기도 한단다. 젖을 떼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되며, 목표 몸무게에 달할 때까지 비육된다. 이렇게 사육되는 과정에 자연은 최대한 배제된다.
대부분 한 번도 풀을 밟아보지 못하며, 주둥이로 진흙을 파헤치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동물 중 하나인 돼지가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어떻게 가공되는지를 알게 된 이후, 돼지고기가 맛이 없어졌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복제 소고기 생산 시설이 설립되었단다. 중국 시장의 육류 수요 증가에 대처하려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실험실에서 육류를 배양하는 실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먹어대는 고기를 위해 엄청난 양의 곡물이 사료로 사용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또 소의 트림, 방귀 등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킨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이러한 기술적 조작을 통해 육류 생산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어느 쪽이 지구의 생태계나 인간의 삶에 더 나은 것일까! 익숙한 것에 표를 던져야 할지, 새로운 모색에 손을 들어줘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유럽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보조금이 주어지는 모양이다. 일각에서는 유럽의 농업이 현대화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보조금 때문이라고도 한단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미국처럼 농업이 기업화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앞서 말한 농민운동가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최근 농민들에게 농민수당이 지급되기 시작한 걸로 안다.

아직 초창기라 개선할 점이 많은 모양이지만 농촌을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법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농어촌 주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 혜택이란 점에서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물론, 농어촌의 자생력을 기를 수 있는 혁신에 더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말이다.
책에는 저자의 가족 이야기도 자주 출현한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기세 싸움이 꽤 재미있다. 아버지의 인정에 끊임없이 목말라하는 아들과 가업을 잇겠다는 아들이 기특하면서도, 힘든 삶은 자기 대에서 끝났으면 하는, 아들은 좀 더 폼 나게 살았으면 하는, 그래서 아들이 못마땅한 아버지가 충돌한다. 그 사이에서 이 편도 저 편도 들 수 없는 엄마-아내의 전전긍긍함도 안타까우면서 정겹다.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힘든 시기지만, 생명의 계절인 봄은 시작되었고 이제 무르익어 여름으로 가고 있다. 생명과 죽음은 한 길 위에 있다. 어쩌면 매우 이상하지만 숙명적인 동반자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생명과 죽음은 동떨어진 세계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괴상하지만 고마운 자연의 이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