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운명을 바꿔버린 식물

공정거래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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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영향을 미친 식물이라고 하면 처음으로 단박에 생각나는 것이 바로 후추이다. 그야말로 대항해시대의 문을 확짝 열어버린 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중요하게 쓰이던 향신료인 후추의 원산지는 인도인데 육로를 통한 교역에는 막대한 운송비가 들었을 뿐만 아니라 무사히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인도와 유럽을 직통하는 항로를 발견하기 위해 여러 권력자들에게 돈을 받아 탐험을 떠난 것이 대항해시대의 시초이다.

결국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지나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였고 다른 한 쪽에선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인도라고 착각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여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이 일어나기도 했다. 후추를 통해 부를 축적한 당시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해양강국으로 발돋움 하면서 여러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후발주자인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이때부터 생겼다고 할 수 있다. 후추는 말 그대로 유럽 패권도 바꿔놓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운명과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운명을 바꿔버린 식물이라고 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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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전해진 차는 유럽의 귀족 귀부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오후에 차를 마시는 '에프터눈 티'라는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고 여성들을 위한 '티 가든'이 생겨나면서 주로 남성들이 커피를 마시던 '커피하우스'는 남성들이 이성을 만나기 위해 티가든으로 이동하면서 문을 닫기도 하였다. 상류층의 문화였던 차는 서민층으로도 퍼져나갔고 특히 산업혁명기 영국의 공장노동자들이 자주 마시는 음료가 되었다. 당시 공장노동자들은 수인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물 대신 맥주와 같은 알코올 음료를 마셨는데 술에 취해 흐느적 거리는 노동자들에게서 제대로 된 효율이 나올리가 없었다.

이때 주목한 것이 차였는데 차 자체의 향균 성분 덕분에 물을 팔팔 끓이지 않아도 수인성 질병을 어느정도 예방할 수 있었고 차에 함유된 카페인 성분이 머리를 맑게 해주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주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차는 이렇게 영국의 각계각층에 퍼져나갔고 수요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시 차는 중국의 청나라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었는데 영국의 차 수입 물량은 늘어가는 한편 청나라 측에 수출하는 품목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무역적자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 영국은 삼각무역을 수립하게 되는데 삼각무역이란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값이 저렴한 면직물을 인도로 수출하여 인도 자체의 면직물 산업이 엉망이 된 자리에 양귀비를 재배하게 하고 아편을 만들어 청나라에 판매한 후 그 대금으로 차를 구매하여 그동안 청나라에 유출된 은을 회수하는 방법이었다. 당연히 청나라에서는 반발이 일어났고 이는 아편전쟁으로 발발했으며, 그동안 잠자는 사자라 불리우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청나라의 군대를 영국이 박살내면서 서구열강들의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배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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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바다 건너 미국의 역사도 바꿔놓는다. 당시 영국에서 넘어간 이주민이 많았던 만큼 미국에서도 차에 대한 수요가 높았는데 영국에서 프랑스와의 전쟁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 판매하는 차의 세금을 올렸고 이에 반발한 미국인들이 영국 상선의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저버리면서 벌인 항의가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영국은 보스턴 항을 폐쇄했고 결국 미국이 영국에 독립하기 위한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후 면직물 판매를 영국에 기대고 있던 남부와 영국에 독립하고 자체 산업을 일으키려는 북부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미국 내의 '남북전쟁'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본에서 활발하게 대중활동을 펼치고 있는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 교수가 집필한 책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은 인간사의 굵직한 족적을 남긴 열 세가지 식물들을 소개한다. 각각의 식물들이 어떤 경로로 이동했으며 어디서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하지만 논문처럼 수치와 실제 증거 등을 제시하는 등 딱딱한 책이 아니라 마치 할아버지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듯 쉽고 편안하게 풀어낸다. 결국 이 모든 일들은 인간의 검은 욕심에 인해 일어난 일들이다. 후추든 차든 식물이 인간을 조종해서 역사에 남을 사건들을 일으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물들은 그저 그 자리에 있었고 열심히 생존했을 뿐이지만 그것을 보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검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식물들을 이용했을 뿐이다.

그 욕망들은 자신의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싶었던 통치자, 투자자에게 성과를 보고해야 했던 탐험가, 어마어마한 토목공사에 동원되어 버텨야 했던 노동자, 투기로 한 몫 벌어보고자 했던 자본가, 맛있는 것을 먹고싶었던 사람들 등 지위와 위치와는 관계 없다. 어쩌면 인간은 확실한 식량 확보를 위해 수렵을 벗어나 땅에 식물의 씨앗을 처음 심었던 그 고대시대 부터 대규모 목축을 위한 사료를 만들거나 석유를 대신할 오일을 추출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자신의 욕망을 식물에 투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지금의 현대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어떤 식물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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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말미에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식물은 인간의 검은 욕망에 휘둘리기만 하는 피해자일까? 인간에 의해 키워지고, 인간이 이용하기 좋게 개량되어 본래의 자신이 사리지기도 하고 하며 자신의 원래 고향과 다른 땅에서 낯선 기후에 맞서 버티기도 하고 죽어가기도 하는 식물들. 그러나 식물들의 지상목표가 자신의 씨앗을 널리 퍼트리는 것에 있다면? 그렇기에 씨앗이 바람에 흩날리거나, 지나가는 동물이나 사람의 몸에 들러붙거나, 동물이 삼키고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도록 맛있는 과육을 만들거나 하는 식으로 진화해온 것이라면? 인간은 자신의 욕망으로 식물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인간의 손을 통해 세계 여기저기로 널리 퍼진 것은 식물의 목표를 이루는 것에 인간이 이용당한 셈이 된다.

거기다 인간은 물을 대고 비료를 대며 정성껏 키우기까지 한다! 이를 위해 인간의 기호에 맞게 형태와 성질을 바뀌는 것은 식물 입장에서 아무것도 아닐수도 있다. 오히려 인간을 유혹하기 위해 변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지구 밖에서 온 외계인이 인간을 관찰한다면 주인(식물)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불쌍한 노예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 식물들이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존재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 역사의 주역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 뿐만 아니라 저자의 당부처럼 '통념을 깨고 사고의 틀을 넓히는 유용한 도구'를 얻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공정거래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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