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브먼트] 나는 무엇에 감탄하는가?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확 깰 것 같다. 매우 솔직하지만 쉽게 꺼낼 수 없는 금기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궁금했다. 정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내와의 결혼에 대한 후회’일까? 그건 아닐 것 같았다. 몇 페이지 안 읽어 추측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 더 나아가 필연적으로 장수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말 못할 고민 혹은 느끼지도 못한 채 공허하게 사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저자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이었다. ‘자신의 주체적 삶에 대한 성찰’을 하자는 거고, 그래야 100세 시대의 인생을 잘 살 수 있다는 얘기였다.
너무 솔직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글에 몰입하게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저자 김정운은 정말 글을 잘 쓴다고 칭찬을 하고 싶다. 최근 또 다른 책에서도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엄청나게 풀어낸 경우를 접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읽을수록 거북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적인 경험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로 몰입하게 하기보다는 ‘음, 그래, 너 잘났다’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정말 말하고자하는 바로 이끄는 이정표로 삼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그의 사적인 이야기가 아닌 진짜 생각해 봐야 할 것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잘 사는 100세가 되려면 무엇을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의 중요한 화두는 ‘재미’다. 성실과 근면으로는 50까지는 살아도 100세를 사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꺾어진 100살이 넘은 지도 꽤 된 사람으로서, 5.6년 전부터 ‘재미’는 나의 물음이기도 했다. 재미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이 재미가 있는가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억지로 무슨 일을 못하는 성향인데다, 작위적인 성실이나 근면 같은 단어에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이고, 거기다 나이가 드니 몸도 마음도 낡은 게 표시가 나면서 더더욱 재미가 없는 것은 쳐다보기도 싫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재미’를 역설하는 것에 아주 많이 공감이 되었다.

어른이 문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유난을 떤다. 게임을 하듯이 공부 좀 하라고 성화다. 이걸 보면, 어른이 되면 올챙이 적 일을 잊는 게 인간임에 틀림없다. 공부가 재미가 없는데 어떻게 공부를 한단 말인가! 자식들이 게임을 못하게 하겠다고 셧다운제 같은 이상한 것을 만드는 어른들, 그들은 아마 어려서 만화방에 못 가게 하는 부모의 눈을 피해 가며 만화를 봤을 거나, 수업 시간에 몰래 책상 아래 만화책을 펼치고 만화삼매경에 빠지곤 했던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매우 궁금하다.
어릴 적, 우리 어머니는 다른 공부는 하라고 하신 적이 없는데 유독 한자에 대해 집착을 하셨다. 40여 년 전, 일일공부라는 학습지가 있었는데 한자 학습지를 꼭 하라고 하셨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렵기만 한 한자를 하라니! 그래서 안 했다. 혼이 나도 안 했다. 더욱 심각한 후유증은 그 이후, 한문 과목을 지독히도 싫어하게 되었다는 거다. 다행인 것은 다른 간섭은 하지 않으셔서 스스로 공부가 하고 싶어졌을 때, 몰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어머니는 한자 학습지를 싫어하는 딸을 보고 깨달아서 그냥 두셨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재미가 있는 일을 하면 행복해진다. 재미가 있는 일을 하면 창의적이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로운 생각과 시도를 하게 된다. 개성을 드러내는 일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 남의 눈치를 잘 안 보게 된다. 대담해지고 추진력이 생긴다. 좀 실패를 하더라도 아니 큰 어려움이 닥쳐도 재미만 있다면 웬만하면 극복해낸다. 이게 재미의 힘이다. 저자는 그것을 역설한다.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도, 어른야말로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왜? 오래 살아야 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삶에 새로운 재미를 되살리는 침실
애들은 어른들이 크게 건드리지 않으면서 방향만 조금 제시해 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격려하면 알아서 재미를 찾게 되어 있다. 어른이 문제다. 하고 싶음보다 해야 함에 초점을 맞추며 너무 오래 살았다. 조직이란 테두리에 맞춰야만 한다는 의무, 거기서 비롯된 타성으로 살아왔다. 재미의 촉수는 다 뭉개져 버렸다. 그런데 오래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5성급 호텔을 흉내 낸 부부의 침실이 삶에 새로운 재미를 되살린다. 자꾸 빠지는 머리카락에 우울했었는데 파마를 함으로써 머리가 다시 풍성해진 것 같으니 신이 난다. 좋아하는 슈베르트의 노래를 부르는 독일 성악가들의 무대의상 비슷한 옷을 지어 입고, 슈베르트가 낀 안경과 비슷한 안경을 끼니 인생이 좀 더 내 것이 된 것 같다. 단순한 리추얼밖에 없는 삶이 아닌 다양한 리추얼을 계속 만들어내는 노력을 통해 하루가, 일 년이, 죽기 직전까지 누릴 것이 많아진다. 이렇게 스스로 재미를 찾고 행복을 제조해 내며 살아야 사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관대하며, 베풀며, 끊임없이 생산적이다.

인간과 동물은 동격이 아니다
저자는 말한다.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욕구가 아니라고. 매우 적절하다. 그건 동물의 욕구다. 인간도 물론 동물이다. 하지만 동격은 아니다. 그런데 인간을 동물과 동격으로 보는 지식인들이 있다.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문명의 도시를 떠나 밀림이나 산속으로 들어가야 맞다. 그러지도 못하면서 인간은 동물이라고 떠든다. 아니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모든 동물이 갖지 못한 무엇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다면 인간은 결코 존엄하지 않다. 저자는 그것을 ‘감탄’이라고 말한다. 감탄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꽤 의미심장한 추론이다.
아기는 엄마, 아빠의 감탄을 들으며 소통에 눈을 뜬다. 발달하며 독립된 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실재로 많은 연구에서, 고아를 데려다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혀도 성장이 늦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자신의 변화를 보고 감탄해주는 사람이 곁에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본능적으로 아기의 변화를 알아차리며 그에 수없이 감탄한다. 이는 아이의 발달을 가능케 한다.
감탄이 끊이지 않는 인생, 그것은 재미를 아는 사람만이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람만이 재미를 알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책이 그 가능성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